지난 주말, 밀린 다운로드 폴더를 정리하려고 AI 에이전트에게 파일 정리를 맡겼다. 나는 그냥 “정리해줘”라고만 했을 뿐인데, AI는 알아서 사진과 문서, 설치 파일을 종류별로 나누고 중복 파일까지 골라냈다. 잠시 후 화면에 작업이 끝났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음 작업을 알려주세요”라는 문장이 떴다. 그 짧은 문장을 보는 순간, 뜬금없이 1991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2』가 떠올랐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했던 스카이넷 말이다. 화면 속 문장 하나가 왜 그 영화를 떠올리게 했을까. 그리고 스카이넷은 정말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
화면 안에서 답만 하던 AI
얼마 전까지 나에게 AI는 질문을 던지면 답을 내놓는 도구였다. 궁금한 내용을 정리해 보여주거나, 화면 안에서 정보를 찾아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플러그인과 크롬 확장 프로그램, 브라우저 연동 기능을 통해 외부 사이트에 직접 접속하고 여러 서비스를 오가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일정을 등록하고, 파일을 내려받아 정리하는 일까지 대화창 밖의 실제 업무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이번에 다운로드 폴더를 맡겨 보니 그 차이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AI는 파일을 종류별로 나누고 중복된 항목을 찾아낸 뒤, 다음 작업을 기다렸다. 사람이 세부 과정을 하나씩 지시하지 않아도 목표를 이해하고 순서를 정해 처리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사용하던 AI와는 분명히 달랐다.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의 등장
이 변화의 핵심은 ‘판단’과 ‘실행’이 사람에게서 AI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AI가 정해진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의 AI 에이전트는 목표만 주어지면 중간 과정을 스스로 설계하고 여러 단계를 순서대로 처리한다. 업무 자동화나 개인 비서 역할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 능력이, 같은 원리로 다른 분야에도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전쟁터에 들어온 AI, 군사 분야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2026 회계연도 예산안에는 자율·원격 운용 시스템 분야에 134억 달러가 반영됐다. 무인 항공기와 원격 운용 장비 등을 포함한 넓은 범주의 예산이지만, 군사 분야에서 자동화와 자율 시스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간 AI 기업과 국방 분야의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정찰, 표적 식별, 작전 계획 수립처럼 사람이 판단해 오던 영역에도 AI가 조금씩 활용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NATO 역시 2021년 인공지능 전략을 채택한 뒤 이를 개정해 왔고, 책임 있는 사용 원칙과 회원국 간 상호운용성을 주요 과제로 삼아 군사 시스템에 AI를 통합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AI는 실험실 밖, 실제 작전 환경 안으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사람의 개입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문제
문제는 AI가 판단하고 실행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최종 결정은 누가 내리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남는다는 점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사람의 개입 없이 표적을 고르고 무력을 사용하는 자율무기체계에 대해 2015년부터 우려를 밝혀 왔고,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속 스카이넷은 바로 이 지점, 인간의 개입 없이 시스템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이야기였다. 지금의 기술이 그 정도로 통합되거나 독립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판단과 실행을 시스템에 맡기는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
스카이넷은 여전히 상상일까
다운로드 폴더를 정리해 준 AI와 국방 예산에 반영된 자율 시스템은 물론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오늘날의 군사 AI는 영화처럼 하나의 통합된 자의식을 가진 시스템도 아니고, 여러 기업과 기관이 각자의 목적으로 개별 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며,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의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설계돼 있다.
다만 그 승인 절차가 기술 발전 속도만큼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문제로 남는다. 내 폴더를 정리해 준 AI가 다음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스스로 물었던 것처럼, 판단의 영역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으니까. 스카이넷이 영화 속 상상으로 남을지, 다른 모습으로 현실에 자리 잡을지는 아직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그 질문 자체는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