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많을수록 변화가 더 어려워지는 순간

경험이 많을수록 변화가 더 어려워지는 순간 - 직장인의 심리학 01 썸네일

며칠 전, 늘 하던 방식대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사용해 온 양식이라 별다른 고민 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때 새로 들어온 직원이 같은 자료를 다른 도구로 정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굳이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이 방식으로 문제가 없었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도 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직원이 만든 결과를 확인한 뒤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몇 단계를 거쳐 처리하던 일이 훨씬 간단한 순서로 끝나 있었다.

새로운 방법이 특별해서 놀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한동안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경험이 쌓일수록 판단이 빨라지는 이유

업무 경험이 쌓이면 문제를 바라보는 속도가 빨라진다.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어디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커질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판단력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거치며 조금씩 쌓인 결과다. 직접 부딪치고 수정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위험한 신호를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경력이 짧은 사람은 새로운 도구를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이지만 현장의 사정과 예외를 놓칠 수 있다. 반대로 오래 일한 사람은 업무의 맥락을 잘 이해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기존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기보다 서로 다른 부분을 보는 셈이다.

경험은 시간을 줄여주지만, 가능성까지 대신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

익숙한 방식이 정답처럼 느껴지는 순간

경험이 쌓이면 판단은 빨라진다.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부터 살펴봐야 하는지 몸이 먼저 반응한다. 문제는 그 익숙함이 다른 가능성을 가리는 순간이다. 이러한 현상을 인지적 고착(Cognitive Fixation: 익숙한 사고방식에 판단이 묶이는 현상)이라 한다.

“예전에는 이 방식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실제로 그 방식은 여러 문제를 해결했고 지금의 업무 체계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다. 다만 과거에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도 “현장은 원래 이렇게 돌아간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현장을 충분히 알지 못한 제안이 나왔을 때는 필요한 설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새로운 제안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경험을 근거로 판단한 것인지, 익숙함을 지키기 위해 경험을 내세운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경험은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정답이 되는 순간 변화는 멈춘다.

새로운 도구보다 기존 경험을 먼저 믿게 되는 까닭

새로운 시스템이나 AI, 자동화 도구가 도입되면 기능부터 의심하게 된다. 업무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오류는 없는지, 기존 과정과 연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필요하다. 현장에서 사용하려면 기대보다 검증이 먼저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가 기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익숙해진 업무 순서를 바꾸고 다시 배워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다. 능숙하게 처리하던 일에서 다시 초보자가 되고, 때로는 후배에게 사용법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편하지 않았다.

현재의 방식을 바꿀 때 얻을 수 있는 이점보다 잃을 수 있는 것을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판단 경향을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선택 경향)이라 한다.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은 뒤에는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관리자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구를 모른다는 사실보다 후배에게 묻는 모습을 어떻게 볼지가 먼저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질문을 피한다고 모르는 부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편하게 말하고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했다. 이를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질문이나 실수를 드러내도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는 상태)이라 한다.

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보다 익숙함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험을 버리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방식을 모두 바꾸는 것도 위험하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거부하면 실제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작은 업무부터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자료 정리나 회의 내용 요약처럼 결과를 비교하기 쉬운 일에 새로운 도구를 적용했다. 기존 방식과 비교해 걸리는 시간, 오류, 수정 과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확인했다.

효과가 분명한 부분은 남기고 현장과 맞지 않는 부분은 다시 조정했다. 처음부터 모든 업무를 바꾸려 하지 않으니 부담도 줄었다. 새로운 방식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험한 뒤 판단하는 과정이었다.

경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다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

경험이 많을수록 변화가 어려운 이유와 변화를 시작하는 실천 방법 요약 인포그래픽
경험은 과거의 무기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도구입니다. 오늘 작은 변화를 시작해 보세요.

오래 일한 사람에게 필요한 새로운 배움

직장인 자기계발을 새로운 지식을 계속 쌓는 일로만 생각했던 때가 있다. 지금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살펴보는 일도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업무 순서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그 이유가 지금도 유효한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변화는 과거의 경험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경험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판단을 모두 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 판단이 만들어진 조건까지 함께 돌아볼 필요는 있다.

환경은 달라졌는데 방식만 남아 있다면 그것은 경험보다 습관에 가까울 수 있다.

경험은 현장을 읽고 위험을 예상하며 사람과 상황을 연결하게 해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경험을 하나의 기준으로 활용할 때는 힘이 되지만, 유일한 정답으로 고정하는 순간에는 벽이 된다.

직장인 변화 관리의 출발점은 새로운 것을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이느냐에만 있지 않다. 지금도 유효한 경험과 이제는 바꿔야 할 습관을 구분하는 데 있다.

내가 지키고 있는 업무 방식 가운데 지금도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일. 변화에 적응하는 시작은 그 구분에서 비롯된다.


직장인의 심리학을 시작하며

이 글은 WorkMind의 새 시리즈 ‘직장인의 심리학’ 첫 번째 글이다. 업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지만 이름 붙이지 않았던 심리적 순간들을, 심리학 개념을 빌려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예전에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말을 최근에 몇 번이나 하셨는가. 익숙함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넘긴 제안이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면 좋겠다.

다음 글에서는 ‘직장인의 심리학’ 시리즈를 이어가며, 업무 현장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심리적 순간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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